글 | 정선

최근 몇 년간 병을 앓고 치료와 수술을 반복하면서 몸과 마음은 지쳐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관계에도 힘들어졌다. 스승은 나를 싫어하고 누군가는 나를 의도적으로 괴롭히고 주변 사람들은 나를 피하고 있었다. 나를 따돌리고 친한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중요한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이것이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 이었다. 

왜 내가 이렇게 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외롭고 고통스럽고 그리고 어쩐지 나는 혼자였다. 왜 사람들은 나에게 괴로움을 주는 걸까? 나는 잘못하지 않았는데 억울하다. 분노.

분노는 불길 같아서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정신적 괴로움을 어쩌지 못해서 과격한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 더 큰 괴로움이 돌아왔다. 

어느 날 법문을 듣는데 이런 말이 마음에 남았다. “대중에서 날이 선 사람의 마음은 불안과 긴장으로 가득 차 있고 고통스럽다.” 정말로 평소에 익숙해서 잘 몰랐는데 마음이 극도로 불안해하고 긴장하고 있었다.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적극적으로 자기를 관찰하고 반조를 원하게 되었다.

괴로운 것은 고립감 때문이었다. 스스로를 가두는 고립의 구조는 이렇다. 예를 들어 ‘상대가 나를 싫어한다.’는 견해가 있으면 상대가 어떤 말, 행동을 해도 ‘나를 싫어하는’쪽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괴로움이 일어나고 본인에게는 괴로움이 심리적 현실이기 때문에 ‘상대가 나를 싫어하여 괴로운 것이 맞다’고 생각하며 그릇된 견해를 더욱 강화시킨다. 이 구조가 반복되면서 견고해지면 생각의 틀에 갇히게 되고 ‘미움 받는 나’와 ‘상대’라는 실체가 따로 있는 것처럼 만들어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이것이 번뇌의 강력한 힘이었다. 

생각이 어떻게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었을까? ‘상대가 나를 싫어한다.’는 생각은 긴 시간을 들여 자만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자만은 내가 돋보이는 삶을 원한다. 내 허물을 지적하거나 다른 사람을 칭찬하면 욕망이 좌절 되면서 마음이 꼬이기 시작했다.  

‘너는 화를 참고 있잖아. 그게 화 야.’라는 조언을 내 전체를 부정하고 싫어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상대의 표정이나 말투를 보고 ‘나를 싫어한다.’고 인식하거나 ‘저 사람은 이런 걸 잘해.’라는 말을 ‘그것을 못하는 너는 싫어.’라고 받아들이는 식으로 말이다. 

혹시 과거에도 이런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지 돌아보았다. 살면서 힘든 인간관계나 상황에서 스스로 고립되는 구조에 빠졌던 것 같다. 오랜 시간 반복된 번뇌의 구조라는 걸 알았을 때는 잠재성향을 발견한 것 같아 기쁘고 자신감이 생겼다. 

번뇌의 구조를 파악함으로써 번뇌의 힘을 상당히 약화 시킬 수 있었다. 마음을 관찰해보면 확고하게 구조를 알기 때문에 쉽게 그런 짓을 그만둘 수 있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오래, 얼마나 진지하게 그런 행동을 해 왔다 할 지라도 해로움을 확실하게 이해한 순간부터는 더 이상 이런 태도를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이 후에는 현실이 더 잘 보였다. 현실은 나를 고립 시켰던 생각의 틀과 상관없이 그냥 흘러가고 있었다. 각자의 조건에 따라서 흘러가는 현실은 무상 고 무아를 따를 뿐이지, 잘잘못과 잘못된 사람들 같은 실체가 좀비처럼 돌아다니고 있는 게 아니었다. 

‘너 안 괴로워?’라고 물으면 안 괴로운 게 아니라 정말 많이 고통스러운 데 왜 괴로움이라고 명확하게 알지 못했을까? 그때는 괴로움을 느끼기는 했지만 지혜로 괴로움을 통찰하지 못한 것 같다. 찾지 못했던 괴로움을 찾아보았다. 생각을 내 것이라고 잘못 알면 뻔히 눈앞에 자기에게 해로운 결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을 거머쥐고 그것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만이 행복이라고 착각하면서 생각에 대한 집착을 놓지못한다. 괴로움을 행복으로 착각하고 집착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일어난 것이다. 

번뇌가 다시 일어났을 때 어떻게 버릴 것인가? 상대의 표정이나 말투가 시무룩 하면 나를 싫어해 라고 번져가는 생각을 바로 자각한다. 그 자리에서 생각의 허물을 조사한다. 사실 표정의 원인은 알 수 없다. 만약 안다 해도 나의 탐진치를 버리는데 중요한 요인이 아니다. 집착하면 괴로움이 일어나고 놓아버리면 그건 상대방의 조건이다. 그 자리에서 집착을 놓고 기본 수행대상인 몸의 감촉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작더라도 선법이 일어난다. 지혜를 활용해서 바르게 사유하고 버리는 과정까지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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