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누군가 상황을 판단하고 해석하는 자기만의 기준, 가치관을 이야기할 때 이를 비판적으로 관찰하여 겉으로 티 내지 않더라도 속으로는 상대방의 견해를 분석하고 비판점을 찾아 혼자 대답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런 사고방식이 언제쯤부터 형성됐을까 그 욕구의 기억을 따라가 보면 가부장적인 집안의 문화 아래 타고나길 주체성이 강한 아이로 태어나 의사 표현의 욕구를 억압받는 과정에서 겪는 불합리함 속에서도 기어코 ‘나’로서 존재하고자 했던 욕망이 있다.

이 사고방식은 세월을 통해 조금씩 다듬어지면서 나의 성장과 함께 동시에 나의 견해가 되었고,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 현상을 해석하는 가장 큰 프레임이 되었다. 견해는 곧 ‘나’가 되었다.

이 견해는 특히 직장 생활에서 탁월하게 작동해 내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에 유리했다. 누구보다 빨리 업무를 익히고, 문제를 해결하는 관점을 제시할 수 있었으며 빠른 기간 안에 일로써 많은 사람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몇몇 후배 동료들에게는 닮고 싶은 사람으로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관찰 대상이 업무가 아닌 나 자신이 될 때는 자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을 키워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행동들을 개선하게 했다. 무엇보다 이런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방식이 존재의 본질에 의문을 던지게 되면서 진리를 찾아 나아가는 시도를 하게 만드는 힘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만나게 해준 가장 큰 조건이었다. 나의 사고방식, 나의 견해는 곧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고, 내게는 ‘좋은 것, 옳은 것'이었다.

수행을 시작하면서도 이 견해는 나름의 반조를 시도하는 데에 유리하게 작동하는 측면이 있었다. 반조를 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건 곧 수행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이니 더욱 이 견해가 사견일거라 의심하지 못했다. 

그런데 호흡 수행을 하면서 불쑥불쑥 일어나는 생각 중 후회와 같은 강한 화의 성격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단편적으로 자극 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각들을 엮어보니 앞서 말한 방식으로 사고해오며 마음을 써왔던 경향성 따라 일어나던 생각이었고, 이렇게 생각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수행에 불필요하고 번거롭게 여겨지면서부터는 내가, 그러니까 내 견해가 정말 옳았던 것인지 혹시 사견은 아니었던지 의문을 품게 됐다.

사견이었다는 걸 인정하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실제로 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걸 호흡 수행을 통해 경험해봤으니 의문을 품은 즉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마다 행위를 하는 순간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하는 것이 아닌 내 견해로 옳고 그름을 가르며 선택해왔었고 수행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견해를 내세워 고집했으며, 견해의 옳음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주장하는 바의 타당성을 높이고자 지식을 습득하면서 견해를 더욱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살아오기도 했다. 나의 견해를 전제로 이해관계에 맞지 않는 사람들에겐 잔인할 정도로 무관심하고 냉담했고, 이해관계가 맞는 사람들은 애착하며 나와 견해가 어울리는 사람들만 선택적으로 친밀하게 지내려고 했다. 당연하게도 ‘나’가 우선인 삶에서 자애는 발휘되기 어려웠으며, 나 이외의 것은 남이었으며 나의 견해, 나의 견해로부터 나온 말, 나의 견해로부터 나온 행위를 지적하는 것은 곧 나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평생을 ‘나’와 동일시하며 가져왔던 견해가 사견이었음을 인정하고 나니 시시하고 조금은 우습기도 했다. 그동안 이 견해를 지키기 위해, 나를 지키기 위해 그렇게 발버둥 치고 머리를 싸매며 고민해왔던 숱한 밤들이 유치하게 느껴져 웃음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러다 ‘별것 아니었네’ 싶었다. 그러니까 삶이라는 게 적어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어려운 게 아니었구나 싶어, 그 모든 게 결국 내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일이었구나 싶어 후련함과 안도감이 밀려오며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조건 따라 형성되어 무상한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 무아에 관한 어리석음으로 ‘나’와 ‘견해’를 동일시하며 이 견해는 내 것이고, 견해는 곧 나이고, 이 견해가 나의 자아라고 자만하며 살아왔던 자신을 돌아보니 그 어리석음에 실소가 나온다. 그러다가도 타고난 기질과 맞지 않았음에도 의지해야만 했던 ‘가족’이라는 생애 최초의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든 독립적인 ‘나’로서 살아내고자 도망친 자리가 고작 내면에 자기만의 견고한 성을 세우는 것이었고, 그 성안에 살고 있던 건 제대로 자라지 못한 어린 내 모습이었다는 생각에 자신이 안쓰러워지기도 했다.

반조를 마무리하며 조금은 벅차오르는 마음을 물 한 모금과 함께 삼켜 눌러본다. 창밖에는 여름 햇살이 나뭇잎 사이사이를 비추며 대지를 데우고 있다. 부처님 가르침을 만나기 전, 인간이란 평생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저주에 걸린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던 때가 떠오른다. 이어서 부처님 가르침을 만나고 드디어 자신을 제대로 마주하게 된 것 같아 바람이 온몸을 통과하듯 걸림 없이 자유로웠던 한때를 기억한다. 따듯한 햇살이 그늘진 자리를 비추듯 부처님 가르침이 마음의 그늘진 자리를 비추어 보이신 것만 같다.

수행을 통해 꼬여있는 마음의 매듭을 풀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신 선원장 스님의 말씀처럼 오랜 과거로부터 시작된 ‘나’라는 매듭을 풀어내면서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희열 가득한 행복을 경험한다. 견해를 놓게 되면 곧 나를 잃게 되는 것일까 봐 견해에 속박되어 살아왔던 지난 삶을 참회한다. 이 경험을 통해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키우고 지금은 비록 수많은 인연에 의지하여 법을 배우고 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자신을 섬으로 삼고, 법을 섬으로 삼을 수 있는 수행자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가 수행하는 건 어떻게 보면 행복해지려고 하는 것이고 행복해지려면 자기가 어디서 맺혀 있는지, 매듭이 어딨는지를 봐야 합니다. 수행은 그걸 보는 과정이지 자학하고 날 괴롭히고 공격하기 위한 과정이 아닙니다. 마음의 어디가 엉켜 있는지 파악하고 매듭을 봐야 매듭을 풀어낼 겁니다. 그걸 보는 과정이 수행이라는 겁니다. 

일묵스님 | 2021.11.17. [자신을 잘 아는 것이 수행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