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한,

네게 필요한.

 어릴 적에 여우와 두루미가 서로의 집에 초대해 식사하는 동화를 본 기억이 있다. 그때, 우리 집에 있던 책에는 여우 그림이 더 얄미워서 두루미가 긴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왔을 때 당황하던 여우의 표정을 보면서 통쾌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한참 지나 어른이 된 어느 날 인간관계에서 번번이 실패를 겪은 후 문득 이 동화가 떠올랐다. 내가 타인에게 한 행동들이 떠오르면서, 두루미와 여우가 서로에게 못된 짓을 하려고 의도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타인의 주둥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막연히 서로 비슷할 것이라 착각하고 타인의 공감을 바란다. 그러다 보니 특별히 미운 마음을 내지 않아도 주둥이끼리 충돌하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안겨주는 상황이 생기곤 한다. 한때 가까웠던 사람이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돼버린 어느 날, ‘상식적이고 배려 깊은’ 나의 행동에 돌아온 그의 대답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건 네 생각이고.”

상식과 배려에 대한 착각

글 | 월정

 어릴 적부터 당연하게 해 오던 습관들이 있다. 예를 들면 저녁 열시면 불을 끄고 잠을 잤다. 그 시간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같이 잠을 잘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것 말고도 아침밥을 꼭 먹고 학교에 가야 한다든지, 아버지가 출근하기 전에 서로의 볼에 뽀뽀를 해줘야 한다든지 당연하고 상식적으로 해오던 것들이 있었다. 언제 시작되었는지 기억도 못 하는 순간부터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었고, 다른 사람이 나와 똑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조금 더 자란 후의 일이었다.

남들이 꼭 그렇게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단순히 나는 절에 가고, 너는 주말에 교회에 가는 것이라든지 나는 아침을 먹는 습관이 있고 너는 아침을 안 먹는다는 것 정도의 문제는 대부분 문제없이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 정도는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사람과 부딪히지 않고 타고 내리는 것 같이 쉬운 배려였다. 그러나 살다 보면 정말 이해하고 배려하기 어려운 상식들도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너도 좋아하겠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 대부분은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일어났는데 가장 가까이 지내는 사형스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주 포착되곤 했다. 법담을 같이 하기도, 일을 같이하기도 했다. 붙어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고 서로가 가진 장점이나 약점들까지 잘 알게 되었다. 정보가 쌓여갈수록 스님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으며 특별히 부탁 하지 않아도 서로가 필요한 것들을 알고 도와주곤 했다. 한편 가까우면 가까워질수록 문제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는데, 내가 아주 잘 아는 이 사람이 당연히 나와 같이 행동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움직일 때 불만이 생겼다. 불만을 넘어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다는 것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게 맞아

-옳다는 견해에 대한 집착

ⓐ

이런 고집의 경향은 그 이전부터 이어져 왔다. 열 살 어린 동생이 한글을 말하기 시작했을 무렵 동생이 스스로 결정 내린 것에 미숙함이 보이면 기다리거나 이해해주기보다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정답으로 훈육했다. 아이에 대한 애착이 생길수록 내가 옳다는 마음은 강해지고 동생의 선택은 항상 위태로워 보였다. 물론 안전상의 문제로 행동에 개입이 필요할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다양한 경험과 선택을 막는 행동이었고 그 기반에는 내가 옳다는 집착이 섞여있었던 것이다. 내가 옳다는 견해에 편향된 생각을 자애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

반대로 아버지나 어머니와 통화를 할 때면 부모님이 나에게 가지고 있는 바람이 보일 때가 있다. 그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나에게 투영하여 이야기할 때 속에 담긴 사랑과 애착, 탐욕 성냄이 복합적으로 버무려져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나를 위하는 마음과 내 마음의 싱크가 맞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 마음은 전적으로 나를 위하는 것도, 나를 위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것들 이어서 혼란스럽다. 일으키는 마음 중 과연 상식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있을까? 상식적이고 당연한 선택이라는 것이 있을까? 상식적이라고 착각하는 원인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견해의 집착의 기반

-조건 지어진 것들에 대한 방일

"도반들이여, 네 가지 취착이 있습니다.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 견해에 대한 취착,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취착, 자아의 교리에 대한 취착입니다. 갈애가 일어나기 때문에 취착이 일어납니다.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합니다."

「바른 견해 경_M9 中」

여러 가지로 내가 옳다는 견해에 집착하는 것은 전부 조건 지어진 것들에 대한 방일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진 견해들은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서 형성된 것들이고 조건이 달라지면 옳다는 생각이나 행동도 새롭게 형성될 텐데, 상식적이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일수록 그 행위의 바탕이 되는 견해에 대해서는 숙고하지 않고 고정된 법칙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조건 지어진 것들에 대해 방일하게 생각하는 것을 기반으로 시야가 좁아지면서 '나'라는 생각이나 행동에 집착하게 되었고 집착하는 생각이 남과 다를 때에는 충돌하는 방향으로 이어진다고 관찰했다.

특히나 좋아하는 대상이거나 같은 집단에 소속돼 있는 대상일수록 나와 동일시하는 경향과 집착이 강했기 때문에 다른 선택과 관점에 대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더 많이 고집했던 것이다.

상대의 조건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나를 기준으로 정해진 상식적인 것들이 다른사람들과 부딛히는여러 상황들을 반조해 보면서 여우와 두루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접시에 담긴 음식을 본 두루미가 이후에 여우를 초대하여 호리병의 음식을 권했을 때는 여우에게 음식 먹는 상식적인 방법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일수도 있겠다.'라고. 이처럼 여러 관계 속에 감추어진 어리석음을 돌아보면서 상대를 향한 자애와 배려의 바른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자애와 배려

; 올바른

내가 고집하는 견해를 기반으로 한 자애나 배려가 아닌 진짜 자애와 배려는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다. 집착 없는 자애, 상대의 결과가 잘못되어도 실망하지 않을 수 있는 자애를 생각하면서 우선 상대에 대한 집착이 배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과의 기준을 나의 만족이나 안타까움에 두는 것이 아니라 인과에 대한 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일어난 일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인과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으면 어떤 일이라도 중립적으로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차분한 상태로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순간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을 묵묵히 도와주는 것이 바른 자애라고 생각했다.

끝으로 상대와 다르다는 것에서 오는 불편과 불만족이 냉소와 비협조와 같이 다소 소극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경우도 자주 일어난다고 관찰했다. 다만 강도가 약하다 보니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경우가 많았는데, 사소한 일에 대해서도 내가 가진 견해를 고집하면서 상대에게 자애심 없이 냉소적으로 대했던 것과 비협조적으로 굴면서 비웃었던 일들을 참회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