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2023. 8. 8

어쨌든 수행처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법문이나 수행하게 되면서 장애가 자연스럽게 극복되기도 하지만 이 문제는 단순히 시간이 해결해 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한 슬럼프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이전에는 남들의 시선과 평가가 자기만족보다 선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념적인 '만족'을 얻기 위해 결핍된 사람처럼 굴었지만, 지금은 체면이 조금 꺾인 반면 그 자체로 만족(안주)해 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넉넉한데 이렇게 편해도 되나'라고 생각할 때의 마음을 보면 평온과 안주라는 선법과 불선법이 뒤섞여 있는데 이때 정확히 불선법의 마음만 제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쉽지 않다고 말하면서 또 한번 스스로를 주저앉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전 같았으면 악착같이 남들만큼 앉아야 하고, 또 바짝 몰아붙여 호흡이나 대상에 대해 예민한 관찰을 이어 나가야 하는 데 그런 마음이 나지 않습니다. 물론 예민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것은 탐욕과 성냄이 함께하기 때문에 수행의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지만요. 그러나 예민함이 없어지자, 방일이라는 또 다른 극단인 어리석음으로 빠집니다. 평온과 방일의 어느 사이에서 일상까지 침범해 오는 수행 전반의 느슨함이 느껴집니다.

멀쩡한 척 해맑게 웃고 있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로 속상합니다. 그냥 주저앉고 싶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 자체로 이미 주저앉아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극단에 머물지 않을 수 있을지, 머릿속에 기억하는 법문 말고 행동에서 하나라도 자연스럽게 실천하고 싶습니다. 극단적인 수행을 내려놓으니 또 다른 극단의 시작인 것 같습니다. 사왓티로 가는 길 위에서 두 번째 역마차를 올라탄 기분입니다. 또 완전히 낯설고 새로운 길을 가는 느낌입니다. 치우친 마음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 다른 변명을 덧붙이기보다 진행되는 마음의 동향을 좀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아직 갈 길이 한참 멀었습니다.

DATE  2023. 8. 17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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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담을 하다가 누군가 나와 비슷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수행을 조기축구회처럼 매일 부담 없이 하고 있었는데 막상 삶의 중요한 문제에 걸려서는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된 자기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포기하고 정말 열심히 수행에 몰두하지 않으면 수행의 진전이 없을 것 같다고, 실질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수행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을 함께 들어주어야 했고 대화하면서도 나에게 걸린 문제가 생각이나 몇 번이고 실소가 나왔습니다. 나에게는 객관화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남에게 담담하게 하는 스스로가 우습기도 했고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내 모습 때문에 상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비슷한 고민 속에서 우리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도반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양극단을 오갈 수밖에 없는 초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시행착오를 겪는 일인가 봅니다. 한 번도 변기에 오줌을 싸본 적 없는 아기가 배변 훈련의 과정에서 바지에 실수하는 것과 같이 탐욕과 성냄 없이 세상을 살아가 본 적 없는 수행자에게 인내와, 훈련하는 일 속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스스로 자애를 보내면서 감내하고 고쳐나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긴긴 슬럼프의 구간이 자신의 미움보다는 그래서 어떻게 할지 능동적으로 행동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