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따와나선우 여러분 잘 지내고 계신가요?
선원에서 바라보는 파란 가을 하늘은 구름이 있어도 맑습니다. 계속 변하며 흘러가는 구름을 보면서도 혹시나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가졌던 고정관념이 있지는 않을까요? 우리는 구름처럼 항상 변화하는 흐름 속에 있는 존재라는 것, 그래서 불완전하다는 것을 다시 기억해봅니다. ‘그건 지금 조건에서 일어난 것일 뿐이야. 넌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어. 여전히 너는 훌륭한 수행자야. 기운 내. 사랑하는 내 친구야.’ '수행 아닌 수행은 없다' | 수요법회 2021년 9월 15일 수행에서 시행착오나 실수하는 과정도 수행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수행을 하다보면 번뇌가 잘 안 버려질 때가있습니다. 그러면 '수행이란 게 할 게 못 되는 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내가 어리석거나 수행을 못해서가 아니라 고질적인 번뇌는 다시 일어나는 것 자체가 당연합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지혜입니다. 긴 템포로 보고 인욕하면서 일어날 때마다 지혜를 써서 버리는 훈련을 하다보면 서서히 빛 바래면서 어느 순간 사라질 것입니다. 구도자는 바른 견해로 끊임없이 교정하는 사람입니다. 자기에게 일어나는 견해, 생각, 삼매, 기억과 같은 법들이 바른 것인지 끊임없이 검증하고 그것이 잘못되었다면 아무리 오래 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즉시에 버릴 수 있는 것이 수행자입니다. 💬 반조일기 '바른견해에 따른 수행'을 반조해 보았습니다. ◆ 수행중에 탐욕이나 성냄이 일어나지 않았나요? 피곤함이 누적되서 졸렸습니다. 그러다보니 내 수행이 잘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루함과 짜증이 났습니다. 방의 온도도 조금 높았는데, 덥다고 아는 감각을 넘어서 더위를 성냄으로 인지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안된다는 생각에 기분이 엉망이었습니다. ◆어떤마음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는지 알고 있었나요? 진심을 다 해서 하지않은 마음, 새로운 느낌이 없다는것에서 수행이 발전되는것 같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되면 앉고 적당한 이유로 수행 시간을 생각으로 때우고 있다는 점도 문제였습니다. ◆법문을 듣고 반조한 내용은 어떤점인가요 수행아닌 수행은 없다는 법문에서 내가 느끼는 부족한 부분도 잘 전환하면 선법을 일으키는 기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시한번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행'이라는것, 거창한 말을 빼고서 내가 하고 있는 행위가 어떤 견해에 기반하고 있는가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면서 바른견해를 가지고 살아가야겠다고 느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내가 좌선이나 행선을 한다고 할때만 집중하는게 아니라 일상적으로 일으키는 생각들, 별 생각없이 하는 말이나 행동들이 어떤 선법/불선법을 기반으로 발생했는지 관찰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수행하는 시간에도 일상적으로 일으키는 마음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데, 요즘 수행하는동안 일으키는 많은 지루함이나 짜증등 일상을 살아가는 태도와 관련되는 부분에 있어서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일상에서의 수행은 어떤가요 걸어다닐때 발의 접촉에 신경쓰려고 하는 편입니다. 그것도 안될때가 많기는 합니다. 호기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산만하게 두리번거릴때가 있는데 그순간 알기보다는 어느순간 산만함으로 인해서 피로감이 몰려올때 아차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발의 접촉을 알고있을때는 평온함을 느낍니다. 물론 그 시간이 길지는 않지만요. *월정스님의 반조일기 중 일부입니다. 💬 반조를 돕는 경전구절2 '바른견해'👍를 성장시켜주는 경전구절 -중략- 도반들이여, '바른견해', '바른견해'라고 말합니다. 도반들이여, 그런데 어떻게 하면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합니까? -중략- 유익함과 해로움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해로움이며, 무엇이 해로움의 뿌리이며, 무엇이 유익함이며, 무엇이 유익함의 뿌리입니까? 도반들이여, 생명을 죽이는 것이 해로움입니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이 해로움입니다. 삿된 음행을 하는 것이 해로움입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해로움입니다. 중상모략을 하는 것이 해로움입니다. 욕설을 하는 것이 해로움입니다. 잡담을 하는 것이 해로움입니다. 욕심이 해로움입니다. 악의가 해로움입니다. 삿된 견해가 해로움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를 일러 해로움이라 합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해로움의 뿌리입니까? 탐욕이 해로움의 뿌리입니다. 성냄이 해로움의 뿌리입니다. 어리석음이 해로움의 뿌리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를 일러 해로움의 뿌리라 합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유익함입니까?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는 것이 유익함입니다. 삿된 음행을 삼가는 것이 유익함입니다. 거짓말을 삼가는 것이 유익함입니다. 중상모략을 삼가는 것이 유익함입니다. 욕설을 삼가는 것이 유익함입니다. 잡담을 삼가는 것이 유익함입니다. 욕심 없음이 유익함입니다. 악의 없음이 유익함입니다. 바른 견해가 유익함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를 일러 유익함이라 합니다. 도반들이여, 무엇이 유익함의 뿌리입니까? 탐욕 없음이 유익함의 뿌리입니다. 성내지 않음이 유익함의 뿌리입니다. 어리석음 없음이 유익함의 뿌리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를 일러 유익함의 뿌리라 합니다."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해로움을 꿰뚫어 알고, 해로움의 뿌리를 꿰뜷어 알고, 유익함을 꿰뚫어 알고, 유익함의 뿌리를 꿰뚫어 알 때, 그는 욕망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적대감의 잠재 성향을 제거하고, '내가 있다.'는 삿된 견해와 비슷한 자만의 잠재 성향을 뿌리 뽑고, 무명을 버리고 명지를 일으켜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이렇게 하면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음식 -중략- 도반들이여, 네 가지 음식이 있으니,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중생들을 부양하고 존재하게 될 중생들을 도와줍니다. 무엇이 넷입니까? 거칠거나 미세한 덩어리진 먹는 음식이 첫 번째요, 감각접촉이 두 번째요, 마음의 의도가 세 번째요, 알음알이가 네 번째입니다. 갈애가 일어나면 음식이 일어납니다. 갈애가 소멸하면 음식이 소멸합니다. 이 성스러운 팔정도가 음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니, 즉 바른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입니다. -중략-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사성제) -중략-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괴로움을 꿰뚫어 알고, 괴로움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괴로움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꿰뚫어 알 때, 그는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무엇이 괴로움 입니까? 태어남도 괴로움입니다. 늙음도 괴로움입니다. 병도 괴로움입니다. 죽음도 괴로움입니다.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도 괴로움입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입니다. 요컨대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가 괴로움입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일어남입니까? 그것은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향락과 탐욕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갈애이니, 즉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일어남이라 합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입니까? 그 갈애가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함, 버림, 놓아버림, 벗어남, 집착 없음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이라 합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입니까? 그것은 성스러운 팔정도이니, 즉 바른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 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라 합니다.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괴로움을 꿰뚫어 알고, 괴로움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괴로움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꿰뚫어 알 때, 그는 욕망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적대감의 잠재 성향을 제거하고, '내가 있다.'는 삿된 견해와 비슷한 자만의 잠재 성향을 뿌리 뽑고, 무명을 버리고 명지를 일으켜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이렇게 하면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중략- -바른 견해 경 M9 이 경은 초기불전연구원에서 번역한 것입니다. 💬 선원 풍경 제따와나선의 가을 풍경입니다. 제따와나선원 뉴스레터 321 모든 존재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따와나선원 강원도 춘천시 남면 윗박암길53 t: 033-262-4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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