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행법담 | 생각이 일어난다고요? 생각은 내가 하는 거 아닌가요? 질문자님은 생각을 ‘나’라고하는 유신견이 강해서 경전을 볼 때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는 표현을 보면 ‘왜 생각이 일어났다고 하지? 생각은 내가 하는 건데.’라며 의아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반조를 통해서 생각이 형성되는 과정을 이해하게 되었고 이 전에 잘못 형성된 기억을 현재에서 바른견해로 법답게 교정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수행하는 것이 맞는지 질문하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생각 자체를 나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생각에 대해서 집착이 강해진다. 생각이 조건에 의해 형성된 것이고 사라지기 마련이고 나라고 할 만한 것은 없구나 라고 알게 되면 과거의 생각을 재조명하게 되고 바른 견해가 없어서 집착이 강하게 달라붙고 고집하는 마음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유신견이라고 보는 것 자체가 사견을 아는 것이고 의미가 있다고 설명해주십니다. 💬 반조일기3 | 무명(avijja) 선우님의 반조일기 중 일부입니다. 유독 화가 일어났던 기억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저의 수행자로서 강렬했던 자만에 대한 첫 기억은 수행의 영역에 처음 발을 들인 순간이었습니다. 이게 들뜸이라고? 지금 나를 공격하는 것인가!
세속에서는 긍정적인 개념이었던 자아가 아상(我相)으로, 세속에서 밝은 성격이 들뜸이라고 이야기될 때면 속에서 부글부글 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또 그런 말을 유독 많이 한 사람에게는 상처를 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기도 했었습니다. 특히, 세속에서의 성격적인 장점, 나의 개성을 비판하는 말들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나’라는 정체성, ‘나의 삶’이 비판받는 일이라 생각했고 이는 나를 향한 공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상대의 마음도 똑같이 괴롭게 해주고 싶다고 생각하고 상대의 견해를 공격하려 들며 강한 적의를 일으켰습니다.
당신은 나보다 못하잖아! 그런데 내가 왜 이렇게 괴롭지?
비판한 상대를 판단하는 기준 또한 자만으로부터 형성된 잣대였습니다. 사교적인 나와 다르게 많은 사람에게 불편을 주는 당신, 경청하려고 노력하는 나와 다르게 자신의 이야기만을 고집하는 당신, 인정받는 나와 다르게 인정받지 못하는 당신, 나는 상대가 나보다 못한 사람이라 생각했고, 나는 나보다 못한 상대를 보며 우월감을 느끼고 나보다 못한 모습을 비판 거리로 삼으면서 상대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견해들에 동조했습니다.
지혜의 힘이 부족해도 거듭 반조했어요.
자신의 마음이 아닌 대상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니 이런 해로운 법의 악순환은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제 마음으로 초점을 돌리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거듭 반조를 했었지만, 지혜의 힘이 부족해 도식적으로, 머리로 하는 반조였을 뿐이었습니다. 이 반조가 어설픈 의도(行)로라도 이어지는 데에는 정말 큰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법으로 현상을 해석하는 학습 같은 과정을 반복했어요!
세속의 견해로 현상을 분별하는 습관들을 교정하기 위해 부처님의 견해인 법의 개념을 공부하고, 법으로 현상을 해석하는 학습과 같은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이 과정은 마치 새로운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겨졌습니다. 언어를 이해하게 되면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게 되듯이, 법의 개념을 공부하면서부터는 수행자의 문화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세속의 견해로 세상을 바라보는 제 관점도 조금씩 교정할 수 있게 됐습니다.
번뇌에 휩쓸렸더라도 나중에 반드시 반조했어요.
오랜 시간 마음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내 것이라고 여겨오면서 살아왔기에 장애를 관찰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알아차리지 못하고 번뇌에 휩쓸렸더라도 이후에 반드시 과거에 일어난 마음을 복기하듯 반조를 하며 일어났던 장애의 원인을 조사했습니다.
유독 화가 일어났던 기억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반복된 반조를 통해 장애를 나와 동일시하지 않고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힘이 조금씩 길러지고, 현재를 관찰하는 힘이 길러지자 조금씩 범주를 넓혀서 현재의 조건을 형성한 과거의 조건, 기억을 조사해보기 시작했고 이 중 유독 ‘화’가 일어났던 기억을 한데 모아 공통점을 찾아봤습니다. 그리고 이는 모두 제가 살아오며 형성해온 그릇된 견해와 이 견해를 ‘나’라고 생각하고 주장하며 내세웠던 자만으로부터 일어난 탐욕이 충족되지 않을 때 일어났음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나를 옭아 매던 것에서 헤어나와 속이 시원했어요.
내가 ‘나’라고 여겨왔던 것을 이해하게 되자 비세속적인 괴로움으로 수치심이 일어났습니다. 형성된 것을 고정불변 한 것으로 여기며 이것을 ‘나’라고 여겨오며 저질러 온 수많은 저열한 실수들이 떠올라 너무 부끄럽고 수치스러웠으면서 동시에 속이 시원했습니다. 나를 옭아 매던 것에서 헤어나온 기분이었습니다.
바른 법을 만나 바른 방향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법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이번 생 내내 ‘자아가 좋은 것이고 영원한 것이라 여기며 살아왔겠구나.’하고 이제라도 바른 법을 만나 바른 방향을 찾았다는 데에 안도했습니다.
💬 반조를 돕는 경전구절3 '나'라는 존재에 대한 강력한💪 집착을 성찰시켜주는 경전구절 그러자 다른 어떤 비구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물질은 자아가 없다고 한다. 느낌은… 인식은… 심리현상들은… 알음알이는 자아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자아가 없이 지은 업들은 도대체 어떤 자아와 접촉하는가?’라고. 그러자 세존께서는 마음으로 그 비구의 생각을 아시고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쓸모없는 인간은 알지 못하고 무명에 빠져 그의 마음이 갈애에 지배되어 마음으로 스승의 교법을 능가하리라고 생각하면서 ‘참으로 물질은 자아가 없다고 한다. 느낌은… 인식은… 심리현상들은… 알음알이는 자아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자아가 없이 지은 업들은 도대체 어떤 자아와 접촉하는가?’라고생각할지도 모른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런저런 법들에 대해 여러가지 경우로 질문하여 그대들을 가르쳤다.” -보름 밤의 긴 경 M109 中 일부입니다. 이 경은 초기불전연구원에서 번역한 것입니다. 💬 선원 풍경 💬 선원 공지 제따와나선원 뉴스레터 322호 모든 존재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따와나선원 강원도 춘천시 남면 윗박암길53 t: 033-262-4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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