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의 기억이나, 상처 같은 외부적인 요소와 더불어 수행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지 않았다면 끝내 원망이나 하다 지쳐서 그만둘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만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많은 법담과, 법답게 생각하는 습관이나,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수행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변화해 왔습니다. 수행할 때 조건을 성숙시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성취하기 위해서 특별한 임무나 단계를 완료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수행자답게 살아가는 삶 속에서 내가 가진 견해가 자연스럽게 바뀌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자라는 게 잘 느껴지지 않아도 땅 한쪽에 자리 잡고는 누렇게 푹푹 익어가는 늙은 호박처럼요. 작년까지 날뛰던 고질적인 번뇌와 수행에 대한 의심을 생각해보면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선방으로 가는 마음이 가벼워진 것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행복을 느낌이나 실존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순간 괴로움은 시작됩니다. 내가 아는 행복은 행복한 '느낌'이었기 때문에 출가하고 나서도 한동안은 비세속적인 행복한 느낌을 쫓아다니느라 괴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괴롭던 시간을 통해서 삼보에 대한 맹목적 믿음만 따라가거나, 수행을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신심이나 수행을 뒷받침해 주는 바른 견해가 있어야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고 괴로움 없는 상태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른 견해를 얻기 위해서는 현재 내 조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한 정확한 통찰과 반조속에서, 그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이면서 결과의 조건인 해로운 마음은 버리고 유익한 마음은 계발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인과의 큰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면 바른 견해도 조금씩 강해지겠지요.
여전히 수행할 때면 저열하거나 치사한 번뇌가 함께할 때도 있지만 패배감에 동력을 잃거나 무엇인가 성취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은 크게 없어졌습니다. 그렇다고 이대로가 수행의 완결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거친 수준의 견해지만 가야 할 방향이 생겼다는 이야기입니다.
DATE 2022. 12. 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