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처는 사람들의 변화를 지켜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있는 그대로 자신의 마음에 직면할 때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본다는 것이 두렵고 괴로운 일 인 것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마음에 직면한 사람들은 오히려 활력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마음과 거리를 두고 여러 번 지켜보면서 어느 순간에 말과 행동 그리고 마음이 왜 이렇게 움직이는지 그 원인을 이해하게 됩니다. 중요한 건 관찰해서 알게 된 내용들을 자기 생각으로 분별하지 않고 부처님께 맡기는 것 같아요. 맡긴다는 건 법으로 본다는 것이고 습관적으로 자기 생각으로 기우는 마음을 위한 표현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반조일기를 보내드립니다. 사성제 기획반조는 쉬어갑니다. 

무엇을 나라고 생각하는가?

걷기 수행을 하면서 발에서 느껴지는 감촉을 관찰하던 중이었습니다. 운동화 밑창과 아스팔트가 만날 때 일어나는 접지력이 가장 강한 대상이어서 거기에 마음을 두고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예전에 아스팔트위를 비 오던 날 걸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친구들과 여름에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서 비를 맞으며 숙소로 돌아왔던 적이 있는데, 그때 발에 와닿던 아스팔트의 감촉이 카펫트처럼 부드러웠고 이 경험은 저에게 특별하고 소중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걷고 움직이는 행동과 그 과정에서 몸이 외부 대상과 접촉하면서 일어나는 감촉은 항상 있는 일이고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그저 일어났다 사라지는 현상일 뿐인데 어떤 접촉과 느낌은 추억과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소중하게 분류하고 잊지 않으려 하며 마치 금고에 넣어둔 중요한 물건을 확인하듯이 한 번씩 돌아보게 됩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일어나는 접촉이지만 어떤 날, 어떤 장소에서의 느낌, 소리, 냄새, 풍경은 다른 일상적인 접촉과는 달리 더 소중하고 잊고 싶지 않고 특별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게 됩니다. 여행을 통해서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는 삶을 부지런히 살았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저의 의식 속에는 ‘경험을 많이 할수록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진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 생각을 조금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경험이 나의 일부이다’라는 견해가 숨어 있었습니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존재를 추구하는가?

경험이 곧 나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 나는 또 어떤 것들을 나의 일부라고 여기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나의 외모와 건강, 가족, 아끼는 물건들과 머무는 공간, 지난 시간에 대한 기억,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성취해온 것과 인간관계, 듣고 보고 읽은 많은 책과 영화 그리고 음악 등을 통해 쌓아온 지식과 정보 등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반복적으로 추구해왔던 것들을 살펴보니, 이런 행위는 나라고 여기는 다양한 대상과 정신적 활동을 축적하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양한 물질과 정신적 활동이 많이 쌓일 수록 존재감이 두터워졌고 마치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 돈이 많아질 때마다 기분이 좋고 안심이 되고 행복을 느끼듯이 저 역시 나라고 여기는 다양한 것을 늘려가며 행복을 느꼈습니다. 

존재의 몸집을 불려가는 방식으로 나도 모르게 살고 있었다는 자각이 일어난 후에, 일상에서 일어나는 활동을 관찰하면서 도대체 어디 까지를 나라고 여기는지 꾸준히 살펴보았습니다. 관찰의 결과, 제가 하는 대부분의 습관적인 행동과 정신활동은 한가지 방향을 향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나는 존재하고 싶다. 최대한 안전하고 고통 없이 행복하게.’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출가 수행자의 삶을 산지 10년이 다 되어가고 그 동안 ‘열반을 증득하기를’이라는 발원을 수도 없이 반복했고 깨달음을 성취하고 열반을 증득하고자하는 삶의 방향성에 대해 크게 의문을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루 중에 일어나는 접촉과 그 접촉을 통해 일어나는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느낌, 싫고 좋음에 따라 집요하게 무의적으로 피하거나 추구하는 느낌, 그에 따라 일으키는 다양한 생각과 번뇌를 살펴보면 저의 하루는 거의 대부분이 좀 더 안전하고 확고하게 ‘존재’하기 위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구도심이라고 할 만한 순간들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그런 마음은 출가를 결심할 당시에 일어났던 마음이고 그 이후에는 여전히 해오던 무의식의 습관대로 고통 없이 최대한 행복하게 ‘존재’하기 위한 방향으로 말과 행동과 생각을 해왔습니다.